K바이오, 빛과 그늘

위탁생산계약은 하는데..

2020-06-08     김상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스위스 소재 제약사와 2건의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계약 의향서를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각각 2462억3258만원, 432억5422만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난해 매출액 7015억9185만원의 35.1%에 해당한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바이오 산업의 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국의 바이오산업은 아직 위탁생산기지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특발성 폐섬유화 치료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해 독일로 기술수출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신약후보물질에 대한 임상2상 진입이 1년 정도 연기됐다고 밝혔다. 기술수출 계약 유지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K바이오의 한계

국내 바이오산업의 현실은 사실 초라하다. 국내용 신약은 30여 개 정도가 개발됐지만 모두 합성 의약품인데다가 성적도 부진하다. 30개의 신약 중 13개는 판매가 중단됐고 10개는 연간 매출액이 1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연간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신약은 5개에 불과하다. 험난한 신약개발의 과정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허가까지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든다. 허가를 위한 마지막 단계인 3상 임상시험은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신약후보 물질이 신약으로 허가받을 확률은 통상 0.01~0.02% 정도로 알려져 있다. 미국바이오협회에서는 신약 후보물질이 신약으로 승인될 확률을 9.6%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신약 개발은 평균 1조~2조원의 개발 비용과 10~15년이라는 장기 개발 기간이 필요하다. 글로벌 기준에 맞춘 임상 시험 경험도 필요하다. 특히 최종 출시 직전 단계인 임상 3상은 K바이오의 ‘무덤’이었다. 3상에서는 1000명에서 3000명의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약물 유효성과 안전성을 최종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보통 3년 정도가 걸리고 수천억 원이 소요된다. 국내 제약사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제약산업은 매출액 대비 R&D 비중이 글로벌 상위기업 기준 약 18%에 달한다.일반 제조업의 3.1%에 비교하기 어렵다. 글로벌 10대 제약사의 경우 국내 10대 제약사보다 R&D에 80배 이상의 자금을 투자한다. 국내 기업의 자체적인 R&D만으로 글로벌 제약회사와의 기술 격차를 극복하는 것은 어렵다.

 

기술수출과 한미약품

그래서 국내 제약사들은 ‘기술 수출’을 활용해왔다. 1989~2018년 동안 한국의 53개 기업이 달성한 라이센스 아웃은 총 123건이다. 2018년에만 5조원을 넘어섰다. 기술수출의 가장 큰 장점은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신약이 성공하면 추가적인 로열티가 들어 오고, 실패하더라도 계약금은 온전히 가질 수 있다. 이를 통해 개발에 들었던 비용을 회수하고, 또 다른 기술을 개발하는 자금으로 쓸 수 있다. 그러나 파트너사의 개발 전략이 바뀌거나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면 문제다.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 반환이 그런 사례다.

K바이오는 최근 타격을 받았다. 한미약품의 3조원 규모 당뇨병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 기술수출 반환과 지난해 신라젠·헬릭스미스 등의 글로벌 임상 실패는 뼈아픈 대목이다. 한미약품의 경우 최근 사노피와의 결별로 위기를 겪었다. 파트너사 사노피가 4조원에 육박하는 당뇨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기술수출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이다. 이로써 한미약품이 2015년 11월 사노피에 기술수출했던 ‘퀀텀 프로젝트’가 모두 반환됐다.

 

돌파구, 바이오시밀러

바이오시밀러는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 분야다. 현재 세계 주요 4대 바이오시밀러 중 약 3분의 2를 국내 기업이 생산 중이다. 2018년 국내 기업 바이오시밀러 수출 실적은 2014년 대비 5배 증가했을 정도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바이오 시밀러는 바이오 의약품의 복제약이라는 뜻이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가격이 낮은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시밀러의 간판 기업이다. 셀트리온은 세계 최초로 바이오시밀러를 세상에 내놨다. 2012년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세계 최초로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판매 허가를 결정했고, 그해 8월 램시마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램시마는 존슨앤드존슨의 제약부문 자회사 얀센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인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다. 뒤이어 셀트리온은 혈액암 치료제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와 유방암·위암 치료제 ‘허쥬마’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바이오시밀러 ‘삼총사’를 만들어냈다.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도 바이오시밀러 주자로 뛰어들었다. 화이자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엔브렐의 바이오시밀러 ‘브렌시스’ 국내 허가를 시작으로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렌플렉시스’를 개발해 유럽 등에 진출했다. 현재 미국 FDA의 승인을 받은 바이오시밀러는 셀트리온이 3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4개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글로벌 시장 매출 점유율은 30%에 육박한다.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48% 성장했다. 2025년에는 663억 달러(약 80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문제는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기업도 규모와 시설만 갖춘다면 얼마든지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다. 복제약산업의 근본적인 한계다.

 

코로나 치료제, 경쟁은 진행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은 아직도 치열한 경쟁이 진행중이다.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의 렘데시비르가 치료제로 사용 허가를 받으면서 각광을 받았다. 현존하는 치료제 중에서 유일하게 임상시험에서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고 확인되면서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긴급 승인 조치가 내려졌다. 하지만 임상시험에서 치명률을 낮추지 못하는 결점을 드러냈다.

최근 주목받는 치료제는 항체치료제다. 상대적으로 개발 속도가 빠른 데다 환자 치료는 물론 예방 효과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항체치료제는 인체의 면역반응 원리를 활용한 의약품으로 최근 전체 의약품시장에서 비중이 커진 분야다.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1일(현지시간)부터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항체치료제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셀트리온도 국책과제로 코로나19 항체치료제 개발을 진행중이다. 지난 4월 중화항체를 선별해 세포주를 개발했고, 최근까지 족제비의 일종인 페럿을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바이러스가 줄어드는 효과를 확인했다. 이달 중 임상물질을 대량으로 생산해 다음 달 중에는 인체 임상에 필요한 항체치료제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설명하고 있다.

GC 녹십자도 혈장치료제의 연내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음 달 중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SK플라즈마 역시 코로나19 혈장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혈장치료제를 개발하려면 혈액제제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2곳만 일정 수준 이상의 설비를 갖추고 있다. 혈장 치료제는 특정 질환에 걸린 뒤 회복한 사람의 혈장 속에 항체가 형성된다는 점을 이용한 치료제다. 완치자의 혈장을 다른 환자에게 수혈해 면역체계가 바이러스에 더 잘 싸울 수 있도록 돕는다. 혈장 치료제는 2015년 메르스 때도 중증 환자 3명에게 투여된 적이 있다.. GC녹십자는 5월4일 질병관리본부의 코로나19 혈장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 과제 우선순위 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됐다. 혈장 치료제는 신약을 만드는 것과는 달리 완치자의 혈장을 얻으면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치료제들보다 개발속도가 훨씬 빠르다. 코로나19 혈장 치료제는 이르면 2020년에 개발이 끝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