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국이라지만…“‘인공지능 후발국’ 벗어나야”
미․중에 한참 못미쳐, ‘인공지능두뇌지수’ 25개국 중 19위
세계 주요국들은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AI기술과 산업 육성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과 공격적인 투자를 펼치고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전문인력이나 투자 규모에서 이에 크게 못미친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 가운데 최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객관적인 자료와 정황 증거를 통해 ‘인공지능 후발국’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 현실을 지적해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과 중국 ‘선두 다툼’ 치열
평가원이 최근 개최한 ‘KISTEP 수요포럼-인공지능의 시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에선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정황 분석과 함께 대안이 제시되었다. 이에 따르면 세계의 AI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9년 기준 780억 달러에 달했는데, 그 중 중국이 48%를 차지했다. AI역량, 즉 스타트업 수, 논문 발표 및 특허 출원, 전문인력 등에선 미국이 가장 앞서나가고 중국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을 따돌리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American AI initiative’를 발표하고 AI 분야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R&D 최우선 투자, AI 관련 리소스 및 인프라 개방, 거버넌스 표준화, 교육강화, 국제협력 강화 등 5대 전략을 제시했다.
중국도 이에 질세라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미 중국은 지난 2017년 ‘차세대 AI 발전계획’을 발표한 이래 국가 차원에서 AI분야 연구개발, 제품개발, 산업응용, 인재양성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2019년부터는 중국이 미국 추월현상도
EU도 이들 국가와 맞서고 있다. EU는 기술 및 산업역량 강화를 위해 기업 및 공공분야 인공지능 역량을 강화하고, 기존 인공지능 진흥계획인 ‘Horizon 2020’에 더해 인공지능 연구지원을 위해 15억유로를 추가 편성하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AI선도국들이 AI역량은 평가 기준에 따라서 약간 차이가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 수, 논문 발표 및 특허 출원, 전문인력 등에선 역시 미국이 선두를 달리고, 그 뒤를 중국이 바짝 추격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경우 미국이 1,393개로 세계 AI 스타트업 회사의 40%를 차지하며, 중국은 383개로 11%를 점한다. 논문이나 특허기술면에선 중국이 AI 발표논문 수(2018년 기준)에서 미국을 추월했다. 2019년에 들어선 특허 출원 숫자에서도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전문인력 면에서는 미국이 선두다. 전 세계 인공지능 핵심인재 500명을 출신 국가별로 분류해보면 미국이 14.6%로 1위, 중국이 13%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세계 AI전문인력 중 한국인 1.8% 불과
그러나 국내의 AI역량은 기술 선도국인 미국, 중국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다. 전 세계 인공지능 전문인력 22,400명 중 한국인의 비중은 2018년 1.8%에 그치고 있다. 한국의 인공지능 두뇌 지수는 세계 탑 인물 500명 중 1.4%에 불과해 조사 대상국 25개국 중 19위에 머물렀다. 투자 규모 역시 선도국들에 비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2018년 기준으로 국내 AI분야 전체 투자 규모는 일개 기업체인 구글(2천600만 달러)의 1/6 수준에 불과하다.
이번 수요포럼에서 발제에 나선 서울대 이경무 교수는 “인력과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AI 발전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우리가 잘하는 영역과 차세대 AI 영역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AI 코어 SW, 플랫폼, 클라우드, 아키텍쳐 중심으로 투자를 집중하고, 중국은 AI응용 시스템 중심으로 투자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존에 경쟁력이 있는 반도체, 휴대폰, 가전, 컨텐츠, 의료 산업 중심으로 AI를 접목하는 ‘Strong X+AI’와 차세대 코어AI SW를 선점하는 방향으로 투자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이날 포럼에서 토론자들은 또 “AI 핵심 코어 기술 개발을 위한 최고급 인재 육성과 X+AI의 융합을 선도하는 고급 인재 양성의 ‘투 트랙’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ISTEP, AI선진화 위한 다양한 정책 주문
이날 포럼에선 이 교수의 발제에 이어 광주과학기술원 김종원 교수, ㈜뷰노 이예하 대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민옥기 본부장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이들은 AI선진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 제언을 곁들였다.
이에 따르면 국내 AI 역량 발전을 위해서는 인재양성, 연구 환경 개선, AI 생태계 조성,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 그리고 이런 정책과제들을 강하게 실행시킬 수 있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인재양성을 위해 미국, 중국 등의 AI 기술 선도국에 비해 재원과 전문 인력이 부족한 만큼 선택과 집중의 투자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다.
이에 따르면 특히 인공지능에 대한 실증지향의 교육, 연구의 핵심 도구인 공용 인프라 및 공통 플랫폼을 구축하여 한정된 재원을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중‧고에서부터 SW, 수학 기초 교육을 강화하여 창의력, 논리력 함양과 프로그래밍 코딩 등에 익숙할 수 있도록 AI 소양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또한 현재 정부의 연구개발사업의 평가방식이 AI 분야의 특성을 반영하여 보다 유연하게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즉, 현행 연구개발 사업은 전문가 풀 부족에서 오는 기계적 평가, 연구개발 계획(안)에 의존한 평가, 정량지표의 불합리성 등으로 인해 국가 연구개발 투자에 비해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연구자의 지난 업적을 고려하여 평가하는게 바람직하다는 권고다.
“AI컨트롤 타워, 산학연관 인적․기술적 교류, 과감한 투자…”
스타트업 활성화나, 산․학․연․관간 긴밀한 인적‧기술적 교류와 협력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AI 스타트업 시장이 활성화되어야 하며, 정부가 국내 스타트업 기업을 위해 테스트베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견해다. 특히 규제완화 또한 인공지능 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위한 필수 요건으로 지적되고 있다. 데이터 3법의 개정으로 인해 인공지능 산업 활성화의 큰 걸림돌이 해소되었으나, 각 분야별 조속한 후속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후속 법령이 없다보니 특정 도메인별로 데이터를 활용한 AI 서비스 솔루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데이터를 문제없이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술적 기반을 갖춘 국가가 장차 AI 산업에서 선두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데이터 활용에 대한 제도적, 기술적 검토 및 연구가 필요하다.
이 모든 정책을 실행, 조율할 AI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데 이날 참석자들은 의견을 같이앴다. AI컨트롤타워가 과감한 투자와 지속적인 관심, 부처간 이해를 조율하고 정책을 드라이브할 실질적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통해 AI 인프라와 플랫폼 구축 및 운용을 개방형 협업 기반으로 추진하고, 이를 중심으로 공유 인프라, 공통플랫폼, 시범 서비스 등에 대한 국가적 장기 비전과 추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홍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