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추가관세" 위협...미중 무역전쟁 파국?
중국 대표단 미국 방문, 최후의 협상에 결과 엇갈릴듯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무역협상을 앞두고 강경책을 꺼내들었다. 그동안 평탄하게 나가던 양국의 협상이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트윗 어깃장'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사실 중국 류허 부총리가 대표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 잡혀 있었고, 이번 주 방미 협의를 계기로 미·중 양국이 무역협상을 타결지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휴일인 5일(현지시간) 돌연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재협상'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10일부터 다시 '관세 카드'를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 트윗 돌발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불공정관행을 방지할 법제화를 거부하자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이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중국이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하며 10일(현지시간)부터 중국산 수입품 관세를 추가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인상 위협이 단순한 압박용 제스처가 아니라 확전이나 파국도 불사하겠다는 선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최고 수준의 경기 활황에다 취임 후 최고 지지율(46%)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으로 중국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중국은 예정된 9~10일 워싱턴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꾹 참고 있는 중국이 미국에 도착해 어떤 카드를 꺼낼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이 국내경제 활황으로 자신감을 보이고 있어 이번 협상도 중국이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모양새가 됐다. 더구나 중국은 국내 경기침체로 미국보다 더욱 경제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협상에서도 이니셔티브를 쥐지 못한 채 끌려가는 협상 과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6일 중국이 기존 약속에서 후퇴했다면서 태도 변화가 없으면 10일 0시1분부터 수입산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들에게 “지난주를 지나며 우리는 중국의 약속 위반을 목격해 왔다. 이미 정해진 약속에서 후퇴한 것이다. 이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역 합의 후) 대중 관세 유지 여부를 포함해 중대한 이슈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현재로서는 10일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재확인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도 같은 자리에서 “지난 주말 중국이 상당한 이슈에서 후퇴하는 것이 확실해졌다”면서 “미국은 이미 한 약속에 대해 재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트위터를 통해 지난해 9월부터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10% 관세를 10일부터 25%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그가 트위터에서 폭탄 발언을 한 것은 미·중 양측이 사실상 합의했던 기술이전 강요 등 무역 불공정 관행 금지 부분을 중국 측이 합의문에 명시하지 않겠다고 번복했고, 이를 라이트하우저 대표로부터 보고받은 뒤 격노한 것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실제로 중국 협상단은 미국 협상단에 중국 법을 바꿔야 하는 합의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중국 측은 법률 개정 문제 대신에 규제·행정 조치를 합의문에 넣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소식통을 인용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국의 추가 양보 요구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중국 협상단이 미국에 추가 양보하는 내용이 담긴 협상안을 내놓자 시 주석이 “모든 결과는 내가 책임질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미국 기업들에 기술이전을 강요하는 중국의 현행 제도를 바꾸도록 요구해 왔다. 기술이전 강요 문제 외에도 중국은 미국이 2500억 달러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 중인 기존 관세를 조기에 철폐해 달라고 계속 요구해 왔다. 미국 측은 중국의 자국 기업 보조금 부과와 데이터 이전 규제, 외국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 관련 규정, 유전자 변형 씨앗 승인 등에서 불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협상대표단은 9~10일 워싱턴에서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으며 류허 부총리도 참석할 전망이다. 미국은 추가관세 인상이란 최후통첩의 시한을 10일로 제시했지만 실제 부과보다는 압박용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으로선 급할 게 없는 상황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더욱 강경하게 나온다는 분석도 있다. 어쨌든 미국은 관세 추가 인상 시기를 못박은 만큼 10일은 무역전쟁의 확전이냐 종전이냐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편 중국 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관세 예고 트윗이 중국 여론에 미칠 영향을 두려워해 관련 보도를 철저하게 통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올라온 지 몇 시간 후 개장한 6일 중국 증시는 민감하게 반응해 상하이종합지수는 5% 이상, 선전지수는 7% 이상 폭락했다. 중국 정부가 그만큼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증시 폭락도 그 민감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기습적인 '대중 관세폭탄' 발표로 미중 무역협상에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무역전쟁 재발에 따른 주가급락에 대한 경고가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빌 그로스의 뒤를 잇는 월가의 '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군트라크 더블라인 CEO(최고경영자)는 7일(현지시간) 미국 경제방송 CNBC의 '하프타임 리포트'에 출연,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대중 관세를 인상할 가능성이 50% 이상"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둘다 양보할 마음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초 시장은 수천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상품에 대해 추가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단순한 협상 전략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오는 10일 0시부터 대중 추가관세가 부과된다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이 같은 기대가 깨졌다.
스위스 은행 UBS의 케이쓰 파커 전략가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라이트하이저 대표의 발언으로 실제 관세 인상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미중간 전면적 무역전쟁은 전세계 경제성장률의 0.45%포인트를 깎아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국의 GDP(국내총생산)은 1.2∼1.5%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계 IB(투자은행)들도 고객들에게 잇따라 위험에 대비하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이날 보고서에서 대중 관세 인상시 중국 주식시장이 10% 이상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메릴린치는 투자자들에게 '안전벨트'를 단단하게 매라고 당부했다.
일각에선 미중 무역협상 결렬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경제적 충격을 줄이기 위해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날 범유럽 주가지수인 스톡스유럽600은 전날보다 5.31포인트(1.37%) 급락한 381.64에 장을 마쳤다.
한국 증시도 미중 무역전쟁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8일 코스피 지수는 장 초반부터 1% 안팎의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4분 현재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2.69포인트(1.04%) 내린 2154.30을 기록 중이다. 기관이 311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내리고 있다. 개인과 외국인은 각각 236억원, 96억원어치를 순매수 중이다.
같은 시각 코스닥 지수는 6.67포인트(0.89%) 내린 746.78을 나타내고 있다. 개인과 외국인이 42억원, 37억원어치를 순매수 중이고 기관이 80억원어치를 홀로 순매도 중이다.
이는 미국 뉴욕 증시가 미중 무역협상 난항 우려로 급락한 것이 국내 증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증권가에서는 "많은 투자회사들이 10일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고객들을 대상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당분간 위험관리에 들어가야 된다는 뜻이다.
한편 최근 불거진 미중 무역전쟁 격화에 대해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는 '불안해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7일 열린 금융.경제상황 점검 회의에서 "미·중 무역분쟁의 불확실성이 재부각됐으나 현재 무역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크게 불안해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다만 "각별한 경계감을 갖고 국내외 금융시장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는 한편 필요 시 안정화 조치를 적기에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한은 간부들에게 경계를 당부했다. 정부가 위기감으로 호들갑을 떠는 것도 안되지만, 급박한 미중 무역분쟁을 남의 일처럼 느긋하게 대처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최기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