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사외이사, 더 이상 CEO 거수기 역할 못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CEO·사외이사 선출에 경영진 개입…독립성과 공정성 저하”

2018-03-15     유현숙 기자
▲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사진=금융위원회

[애플경제=유현숙 기자]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CEO 선임투명성 제고,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등 정부가 관련 개선방안을 내놨다.

금융당국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소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 간담회를 열고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자리에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금융연구원장, 기업지배구조원장, 은행연합회장, 생명보험협회장, 손해보험협회장, 금융투자협회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그간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부적절한 경영이 국민경제에 가져올 악영향을 고려해 일반회사에 비해 건전한 지배구조를 확립할 공적규율이 필요함에 따라 금융회사 지배구조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왔다.

그러나 금융회사들의 실제 지배구조 운영은 금융소비자 및 주주들의 기대 수준에 못 미치는 상황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이와 관련해 금융혁신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금융권의 임원 선출절차를 투명하게 하고 CEO 권한을 견제하는 지배구조로 운영될 필요성이 있다고 권고한 바 있다.

금융감독원이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실시한 금융지주 지배구조 실태점검 결과, 사외이사 선임과정에 대표이사가 참여하거나 성과보수 이연지급분에 대한 환수규정이 없는 등 투명성과 공정성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소유지배구조 측면에서 지배구조법 시행으로 2금융권 최대주주에 대한 적격성심사 제도가 도입됐지만 금융회사의 경영을 실제로 지배하는 자를 심사하지 못하고 심사실익이 없는 자를 심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등의 한계도 노출됐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가 균형을 갖추고 투명성·공정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 및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우선 심사대상 선정 기준이 모호한 최대주주 자격심사 제도를 손본다. 현행은 금융회사의 최대주주 중 최다출자자인 개인 1인이 심사대상으로 선정되기 때문에 금융회사에 대한 실제 지배력과 무관한 사람이 심사를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대상을 개편해 최대주주 전체 및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주주로 범주를 확대한다. 또 최다출자자 외에 특수관계인인 다른 최대주주들도 지배력을 행사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심사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심사대상 대주주가 보유한 의결권을 대리인에게 위임한 경우에는 대리인도 심사대상이 된다.

반면, 경영 관여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고 판단되는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이나 단순 주요주주는 심사대상에서 제외된다.

심사대상 범위를 확대하는 동시에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금고형 이상) 여부와 배임죄(고의성) 여부를 대주주 적격성 심사요건에 추가해 지배구조 개선 효과를 높일 계획이다.

의결권 제한명령 부과대상도 명확화하며, 법인 주주에 대한 의결권 제한명령 부과기준을 새로 만든다. 또 은행법 및 저축은행법 사례를 준용해 대주주가 금융위원회의 의결권 제한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때 ‘주식 처분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한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최근 하나금융지주 금융회사 CEO 선임 과정에 대한 투명성 제고하고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CEO 자격기준과 승계프로그램을 내실화할 방침이다.

최고경영자의 자격요건으로 금융전문성, 공정성, 도덕성, 직무전념성 등을 의무화하며, CEO 후보군 관리에 있어 투명한 평가기준을 마련하도록 지배구조내부규범에 관련된 사항을 추가한다. CEO의 임기 만료, 유고 등 상황에 따른 승계절차도 지배구조내부규범에 반영하도록 의무화한다.

소수주주권 중 주주제안권 행사요건도 현행 ‘의결권 0.1% 이상’에서 ‘의결권 0.1% 이상 또는 직전분기말 기준 보유주식 액면가 1억우너 이상’으로 변경해 완화한다.

특히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눈에 띈다. 그간 사외이사는 주체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고 CEO의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왔다.

이러한 지적에 금융당국도 이른바 ‘셀프연임’을 문제 삼고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해당 금융회사 CEO의 참여를 금지하는 등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최근 하나금융지주 김정태 회장과 KB금융지주 윤종규 회장도 이러한 지적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빠졌다.

최고경영자를 견제할 수 있는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금융당국은 CEO 선출 등 금융회사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외이사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외이사의 연임에도 외부평가를 의무화한다. 또한 외부평가를 담당하는 수행기관의 자격요건도 구체화한다.

사외이사 후보자군 선정도 다양한 이해관계자 및 외부전문가가 추천한 인재풀(pool)을 반영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하고, 사외이사의 순차적 교체를 원칙으로 명시해 업무수행의 연속성을 갖추고 경영진 견제 역량을 유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독립성도 강화한다. 금융회사의 CEO가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출에 관여하는 사례가 많았던 만큼 견제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CEO가 감사위원 및 사외이사 선출 임추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임추위의 3분의 2 이상을 사외이사로 구성하도록 의무화한다.

고액연봉자에 대한 보수공시도 강화한다. 보수총액 및 성과급이 일정규모 이상인 임직원의 개별보수를 보수체계연차보고서를 통해 공시한다. 또 상장 금융회사가 등기임원에 대한 보상계획을 임기개시시점을 포함해 임기 중 최소 1회 이상 주주총회에 상정하도록 의무화하는 Say-on-Pay 제도도 도입한다.

이밖에 감사위원 선임요건을 강화하고 감사업무의 독립성도 보장하는 제도 개선과 금융지주 자회사간 겸직 규제를 완화하는 등 전반적으로 손질해나갈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15일부터 다음달 24일까지 추진할 수 있는 과제부터 금융회사지배구조법 및 시행령, 감독규정 개정안 입법예고에 들어가며 규제개혁위원회 및 법제처 심사를 거쳐 올해 상반기 중으로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는 3분기 중으로 개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생산적 금융과 포용적 금융은 실물경제에 대한 지원과 금융의 미래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지만 국민의 신뢰 없이는 진정성을 인정받기가 어렵다”면서 지배구조 개선을 당부했다.

이어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금융권이 공공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경영원칙을 확립한다면 국민의 오해를 불식하고 신뢰를 확보해 금융산업의 새로운 혁신을 위한 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