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 … 평화의 봄은 오는가
재산을 둘러싼 재벌가의 법정 싸움은 재계의 단골메뉴다. 삼성, 현대, 두산, 금호, 한진, 롯데 등 ‘쩐의 전쟁’을 거치지 않은 로열패밀리는 없을 정도. ‘형제의 난’ ‘모자의 난’ ‘숙부의 난’ 그 종류도 다양하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 일감을 몰아주며 진한 우애(?)를 나누다가도 자신의 밥그릇에 손끝하나라도 스치기라도 하면 그 순간부터 애증의 관계로 변모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경영권 세습을 위한 재벌가의 통과의례라도 한다. 이에 [한국증권신문]은 유난히 ‘피’보다 진한 재벌가의 치열했던 ‘쩐의 전쟁’의 내막을 다시금 재구성해본다. 그 세 번째 주인공은 조중훈 창업주의 타계 이후 법정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한진가 형제들의 그 두 번째 이야기다.
“이제는 ‘장남 vs 차남+4남’이다.”
차남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별세 후, 한진가 형제들의 ‘유산 다툼’은 오히려 더 점입가경 형태를 띄었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의 연합전선은 더욱더 힘을 공고히 해 장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향해 쉼 없이 공격했다.
법정공방 2라운드는 조중훈 창업주가 1990년에 설립한 대한항공 기내 면세품 수입 대행 회사 ‘브릭트레이딩 컴퍼니’ 지분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은 “‘브릭트레이딩 컴퍼니’ 지분이 4형제에게 24%씩 균등하게 나눠져 있었음에도 조양호 회장이 형제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회사의 납품권을 S무역으로 변경했다”며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조양호 회장이 조중훈 창업주 사망 후 원종승 대한항공 전무를 내세워 S무역을 설립, 기존 외국 면세품 남품업자에게 ‘브릭트레이딩 컴퍼니’가 S사로 사명을 바뀌었으니 납품권을 변경해야한다고 속여 가로챘다는 게 소송 요지다.
더욱이 조양호 회장은 매년 20억원 가까운 사업이익을 남겨 그에 따라 매년 2~4억원의 배당금을 챙기고 있다는 주장이다.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은 소장에서 “조양호 회장의 배임행위 때문에 우리가 받아야할 배당을 받지 못하게 돼 손해가 발생했다”며 “납품권을 빼앗긴 ‘브릭트레이딩 컴퍼니’는 폐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배상액으로 조양호 회장은 각 30억원씩 모두 60억원을 지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이 소송은 3년에 걸쳐 항소에 항소를 거듭한 끝에 법원 조정으로 마무리되며 일단락된다. 양측 모두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 ‘화해모드’가 극적으로 형성됐다. 더욱이 합의안에는 ‘조양호 회장이 동생들에게 각각 6억원씩을 지급하라’는 조건이 담겨있어 형제간에 묵힌 앙금을 이번 기회에 씻어내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모아졌다.
하지만 조정은 조정일 뿐. 이를 두고 형제간의 입장차는 여전했다. 조양호 회장은 당초 피소 금액이 60억원이었었음을 감안, 12억원만 주게 돼 ‘패했다’라기 보다는 ‘화해’의 의미가 크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반면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은 1심에서 패해 6억원마저도 받지 못할뻔 했으나 지급 받게 됐으니 사실상 소송에서 이긴 것 아니냐는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무늬만 ‘화해’, ‘갈등’은 여전했다. 더욱이 이들은 2라운드 소송전이 진행되는 가운데 한진가 소송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암장 소송’까지 불사, 유산 싸움의 끝장 한판 대결을 펼친다.
쩐의 전쟁 정점 ‘부암장 소송’
‘부암장 소송’은 조중훈 창업주의 기념관 건립을 둘러싸고 발생했다. 이 역시도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이 먼저 소송을 제기하며 불거졌다.
부암장은 조중훈 창업주의 자택으로 조중훈 창업주 타계 후 형제들간의 합의에 의해 기념관화 시키기로 합의한 곳이다. 때문에 당시 형제들은 사저의 지분을 모두 한진그룹 계열사인 정석기업에 넘긴 바 있다.
하지만 5년이 넘도록 기념관 건립이 진행되지 않자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은 조양호 회장과 정석기업을 상대로 ‘부암장’의 상속지분 반환과 정신적 피해에 대한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은 “기념관을 세우는 것은 아버지의 뜻인데 조양호 회장이 부암장을 사유재산화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양호 회장의 입장은 달랐다. “현재 부암장에 살고 계신 노모가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공간의 변화를 원하지 않아 공사를 못하고 있는 것 뿐”이라며 “사전에 협의 하지도 않고 소송부터 제기한 것은 심의 유감”이라고 맞섰다.
그리고 이들의 대립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또 다른 소송전을 야기, 그야말로 ‘남남’이나 다름없는 행보를 거듭한다.
1심에서 재판부가 “합의서에 부암장 기념관 건립 사업을 추진한다는 추상적 내용만 있고 사업 시기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며 큰형의 손을 들어주자, 조양호 회장은 곧바로 그 기세를 몰아 조남호 회장의 한진중공업을 상대로 토지 반환 요구 소송을 2건이나 동시에 제기한다.
그 첫번째가 ‘제주도 KAL호텔 땅 반환 요구 소송’으로, 대한항공이 1995년 한진중공업으로부터 호텔 부지로 들이면서 당시 7필지에 대해서는 소유권 이전을 했지만 비업무용 토지 11필지는 중과세 때문에 이전 등기 없이 별도의 합의서만 작성, 이에 대한 ‘소유권 이전 등기 절차’를 이행해 달라는 주장이다.
더욱이 한진중공업이 비업무용 토지 주변에 철조망 설치와 변전실 철거를 통보하는 등 사실상 호텔 영업을 할 수 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조남호 회장은 “토지매매계약이 체결된 사실이 없음에도 조양호 회장이 소유권을 이전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대한항공 본사 빌딩 인근 토지를 두고도 두 사람의 대립은 팽팽했다. 조양호 회장은 이곳의 임대차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한진중공업에 토지 반환을 요구, 관련 토지에 들어서 있는 김포주유소의 건물 철거를 주장했다. 주차 공간이 필요해 땅이 필요하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조남호 회장은 “조양호 회장이 토지 소유권을 이유로 10년 넘게 운영해 오는 주요소 철거를 요구하는 것은 권력남용”이라며 강력 반발, 불허 입장을 표명하며 두 사람의 갈등은 정점을 향해 달렸다.
‘유언장 진위’ 감정 실시 ‘눈살’
그리고 그 정점은 끊임없이 대립해오던 ‘유언장 진위’를 둘러싸고 결국 터지고 만다. ‘부암장 소송’ 1심에서 패소한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이 항소하면서 피 튀는 공방이 끊이지 않자 2010년 4월 ‘유언장 감정’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양측 변호사가 수차례 조정을 시도했으나 번번히 결렬되자 재판부는 “유언장이 근거가 돼 부암장 지분 문제가 결정된 만큼 결론을 내리려면 유언장 감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조양호 회장이 공개한 조중훈 창업주 유언장에 따르면 ‘부암장’ 땅 지분을 정석기업에 넘기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형제들 간의 의견이 오랫동안 대립, 조중훈 창업주가 과연 구두로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 확인이 불가피했다.
재판부는 곧장 조중훈 창업주가 사망 전까지 입원했던 인하대학교 병원 진료기록을 다른 병원에 보내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세 차례나 양측의 법정 변론이 재개됐다. 하지만 정확한 유언장 진위 여부 확인은 불가능했고, 재판부는 마지막으로 양측에 화해를 권고한다.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한진가 형제들의 분쟁에 드디어 ‘해빙기’가 찾아온다. 형제들 모두 법원의 화해권고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8년 이상을 반목해오던 한진가의 요란했던 법정공방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오랜 소송에 형제들 모두 지칠 때로 지친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화해 내용은 ‘비밀’에 붙여졌다.
‘시아주버님’ 조양호 vs ‘제수씨’ 최은영 ‘맞짱’
하지만 형제들의 유산 다툼에 가려져 있던 ‘한진해운의 계열분리’가 숨은 분쟁의 씨앗으로 떠오르면서 새로운 복병으로 자리매김한다. 한 때 동맹을 맺었던 ‘제수씨’와 ‘시아주버님’이 ‘한진해운 경영권’을 둘러싸고 ‘적’으로 대립, 팽팽한 기싸움을 벌인다.
사실 한진해운의 계열분리 대립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조수호 회장이 별세 전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의 지분을 꾸준히 매입, 이를 두고 추측이 난무했다. 당시 조수호 회장이 지병으로 경영참여가 어려웠던 때였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지분구조 상 조양호 회장이 조수호 회장보다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해 적대적 M&A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우세했다.
조양호 회장은 다른 기업의 적대적 인수합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우호지분이라며 백기사 역할임을 강조했지만, 계열분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경영권 분쟁’의 소지를 남겼다.
더욱이 최은영 회장이 조수호 회장 별세 후 한진해운 부회장에서 한진해운 회장으로 선임, 한진해운의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하면 할수록 계열분리에 대해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선을 그었다.
그러던 2009년 10월, 최은영 회장이 한진해운 지주회사 한진해운홀딩스를 설립, 대표이사 겸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계열분리 수순의 첫 행보를 감행한다.
조수호 회장이 병석에 누워있을 당시 ‘한진해운 경영 독립 보장’에 대해 조양호 회장이 “제수씨가 알아서 하라”며 약속했음에도 불구 이행되지 않자, 공식적으로 독립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최은영 회장은 “조수호 회장이 살아생전 지주회사 전환 구상을 많이 했다. 조양호 회장과도 2007년부터 지주회사 전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며 “항공과 해운을 한 그룹에서 같이 하는 사례는 없다”고 독립에 대한 열망을 확고히 했다.
그리고 같은해 12월, 한진그룹 계열사의 핵심기업인 정석기업의 보유지분을 전량 매각, 지분 정리 수순에 돌입한다. 정석기업의 보유주식 4529주(0.22%)를 전부 매각했으며, 두 딸인 조유경·유홍 자매가 가지고 있던 3020주(0.15%)도 모두 처분했다.
또 2010년 8월에는 한진중공업과 대한항공 지분을 동시에 매각하며 끊임없이 독립에 대한 신호를 보낸다. 최은영 회장은 한진중공업 보유주식 1만2986주 전량을 장내 매도했으며 두 딸도 각각 보유하고 있는 주식 8656주를 모두 처분했다. 대한항공 지분 역시도 세 모녀가 합해 1만여주를 장내매도, 지분율을 낮춰갔다.
계열분리를 위한 본격적인 시동은 2011년 5월 개시된다. 그동안 조금씩 한진그룹 계열 주식을 처분하며 지분율을 낮춰오던 최은영 회장은 대량 매각 행보를 보이며, 조양호 회장과의 완전한 결별 수순을 밟는다.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계열사가 대규모 기업집단에서 분리되기 위해서는 기업집단과 계열사가 서로 소유하고 있는 주식이 3%미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은영 회장은 세 차례에 걸쳐 대한한공 주식 4만3335주를 처분했다. 최은영 회장의 두 딸도 각각 대한항공 회사 주식 1만8320주와 1만9160주를 매각, 세 모녀의 대한항공 보유 지분율이 3% 미만으로 감소했다.
아울러 12월, 한진해운이 보유하고 있던 한진관광과 정석기업의 지분을 전량 처분하며 사실상 한진그룹과의 모든 ‘분가’ 수순을 마친다.
하지만 조양호 회장이 이끄는 한진그룹이 한진해운홀딩스의 지분 27.41% (대한항공 16.71%, 한국항공 10.70%)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데다, 최은영 회장의 홀로서기에 부정적인 견해를 거듭 강조하고 있어 계열분리가 성사되기까지 여전히 두 사람 사이의 ‘냉기류’가 계속되고 있다.
조양호 회장이 “조카들이 경영권을 갖게 되면 자연스레 계열분리가 될 것”이라며 희망 섞인 발언을 내뱉기도 했지만 최은영 회장은 조양호 회장의 그간 행적으로 미뤄 이 역시도 믿지 못하는 눈치다.
‘동지에서 적으로’ 또 ‘불화가 분쟁’으로 ‘남남’이 되어 평행선을 걷고 있는 이들 한진가 형제들에게 과연 평화의 봄은 찾아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