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경웅 박사의 메르켈 총리의 사자후 (獅子吼)

2015-03-13     애플경제

   메르켈 총리의 사자후 (獅子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방일 행적이 화제다. 메르켈은 일본을 7년 만에 방문했다. 그새 중국에는 7번이나 들렀다. 메르켈은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에 대해 조용하지만 준엄하게, 또 노련한 일갈을 날렸다. 웃으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사실상, 사자후를 토한 셈이다.

메르켈은 아사히신문사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과거에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도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제대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는 “과거를 반성하는 것은 화해를 위한 전제조건 중 하나이다”고 전제, “화해가 있었기에 유럽연합(EU)을 만들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야당 지도자와의 만남에서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메르켈은 일본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누가 봐도 알만한 어조로 지적을 했다. 직접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의 언론들이 메르켈의 방일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것은 당연했다.

이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 가관이다. 일본 외무상은 “일본과 독일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일본 언론들은 메르켈의 발언과 행적을 의도적으로 축소 보도했다. NHK는 메르켈의 아사히신문사 강연회를 ‘한 신문사 방문’ 정도로 얼버무렸다. 독일 언론들은 이를 놓고 “과거사와 관련한 일본의 학습능력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꼬집었다. 일본은 경제 대국에 걸맞지 않는 어설픈 수준을 여보란 듯이 계속 보여주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일 비판 역시 날이 서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끔찍하며 지독한 인권 침해’라고 언명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아예 ‘위안부’가 아니라 ‘전시 성노예 (sex slave in wartime)’라고 명명하면서 강력하게 비판했다. 미국 하원은 지난 2007년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한데 이어, 작년에는 “이 결의안 내용을 이행하라고 국무장관이 일본 정부에 촉구하라”고 한 발 더 나갔다.

미국의 양식있는 지식인들은 아베 정권의 과거사 수정 시도에 비판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역사학자 19명이 집단 성명을 발표하는가 하면, 존스홉킨스대학 핼핀 연구위원은 “일본 정부의 역사 수정주의 논리는 일본이 피해자라는 식인데, 그렇다면 미국이 침략국이고 트루먼 당시 대통령이 전범자인가”라고 되물었다. 유엔 인권위원회도 “일본은 위안부 인권 유린에 대해 공개 사과하고, 국가 책임을 인정하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세계의 양심 앞에 일본이 자행하고 있는 역사 세척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1940년, 일본은 제12회 도쿄 올림픽의 개최지로 선정됐었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릴 뻔 했던 도쿄 올림픽은 1937년 일본의 중국 침략에 따른 중•일 전쟁으로 무산됐다. 당시 일본 군부는 전쟁물자 부족 등을 이유로 올림픽 개최를 반대, 중지시켰다. 도쿄 올림픽이 중단된 배경에 일본 군국주의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이 일어났고, 유럽에서 독일과 이탈리아가 참전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됐다. 그 이전, 1923년에는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20만 명에 육박한 희생자를 냈다.

2020년, 일본에서는 제32회 도쿄올림픽이 열리게 된다. 지금처럼 일본이 세계를 향해 독불장군식 행보를 갈 경우, 과연 도쿄올림픽이 인류 화합과 평화의 제전으로 될 수 있을까. 키신저 박사는 이미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는 “중국과 일본의 긴장 국면이 격화되면서 전쟁이라는 유령이 아시아를 배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배경에는 여지없이 일본의 우경화 노선과 역사 왜곡이 자리를 잡고 있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4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피해의 파고는 넘실대고 있다. 1940년 이후 꼭 80년의 시차를 두고 열리게 될 도쿄 올림픽, 역사가 어떤 지각 변동을 할지 잘 지켜볼 일이다.

                           김경웅 (한반도 통일연구원장, 정치학박사)